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는 큰 울림을 주는 고전이다. 늙은 어부가 바다에 나가 85일째 되던 날 거대한 청새치를 만났고 사투 끝에 청새치를 항구까지 끌고 오지만 상어 떼의 공격으로 결국 청새치는 뼈만 남게 됐다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노인’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주인공이 젊은이였다면 아마 큰 감동은 없었을 것이다. 주인공인 ‘노인’이 ‘노화’라는 자연의 순리를 이겨내고 좌절하지 않는 삶의 태도를 보여줬기 때문에 큰 감동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설과 달리 현실에서 지금 우리가 보는 노인에 대한 시선은 어떠한가? ‘노인과 바다’ 속 좌절을 모르는 노인보다는, 늘 좌절하고 희생하는 것이 당연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가?
노인학대 피해 노인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가족인데 어떻게 신고하냐, 그냥 참겠다”라는 말이다. 학대 피해 노인들은 자신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다친 본인보다 학대 행위자들을 먼저 걱정한다. 부모 일방의 폭행을 뻔히 알면서도 ‘부모인데 어쩌겠냐, 돈이 없어 요양 시설에도 보낼 수 없다’며 그저 나 살기 바빠 애써 학대를 외면하는 자식들도 있다. 피해 노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렇게 희생을 강요당한 노인들은 학대 피해자가 된다. 2023년 6월 보건복지부와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에서 발간한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노인학대 사례는 6,774건, 2022년은 6,807건으로 0.5% 증가했다. 코로나 제한 조치 완화 등으로 증가세가 가파르지 않지만 노인학대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학대 노인의 희생은 노인학대는 발견이 어렵다는 문제도 야기한다. 2022년 노인학대 대부분 가정 내(5,867건, 86%)에서 발생했고 학대 행위자는 배우자가 2,615건, 아들이 2,092건을 차지했다. 이는 피해 노인이 신고하지 않으면 노인학대 자체가 발견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노인학대 조기 발견 및 관심 유도를 위해 부평경찰서는 경로당 등을 찾아가 상담하는 ‘찾아가는 상담소’를 운영하고 노인보호전문기관과 함께 노인학대 신고 독려를 위한 많은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이 약한 피해 노인은 여전히 자신만 희생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신고를 주저하고 있다.
노인학대로 경찰에 신고한다고 해서 무조건 다 처벌받는 것 아니다. 중대한 사안이라면 엄중한 처벌을 받겠지만, 처벌 이전에 경찰에서는 피해자 안전조치(스마트워치 제공, 맞춤형 순찰 등) 및 임시숙소 등 피해자 보호를 위한 조치들을 실시하고 있다. 사건 접수가 되었더라도 판사의 재량에 따라 ‘가정보호사건’이라고 하여 형벌보다는 가정을 지키기 위한 가해자 교육이나 상담 이수 등으로 마무리되는 예도 있다.
‘노인과 바다'에서 헤밍웨이는 "사람은 나이를 먹었다고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조심성이 많아질 뿐이다"고 이야기한다. 노인들이 괜찮은 것은 정말 괜찮은 것이 아닐 수 있다. 단지 조심하고 있을 뿐이다. 괜찮다고 말하는 노인들에게 조금 더 따뜻한 관심을 줄 때 노인학대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뉴코리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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