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공주시, 1월의 역사 인물 ‘독립운동가 이관직’ 선정

독립운동단체 신민회 조직 및 무관양성기구인 신흥강습소 창설

이나라 기자 | 기사입력 2022/12/30 [09:36]

공주시, 1월의 역사 인물 ‘독립운동가 이관직’ 선정

독립운동단체 신민회 조직 및 무관양성기구인 신흥강습소 창설

이나라 기자 | 입력 : 2022/12/30 [09:36]

▲ 공주시, 1월의 역사 인물 ‘독립운동가 이관직’ 선정


[뉴코리아저널=이나라 기자] 공주시는 정안면 사현리에서 태어나 애국계몽운동, 무장독립투쟁 등을 통해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 이관직 선생을 1월의 역사 인물로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선생의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치용(穉用), 호는 해관(海齧)으로 1900년(고종 37)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 3년 뒤인 1903년(고종 40) 졸업한 후 육군 보병 참위, 1907년(고종 44)에는 육군 보병 부위에 임명돼 대한제국의 군인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1907년 8월, 한일신협약으로 인해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인재 양성을 위해 경북 안동에 협동학교를 설립해 교사로 활동했다. 또한 독립운동단체인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해 일제 침략에 대항하는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했다.

국권피탈 이후인 1910년 9월에는 신민회의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적합한 지역을 물색하기 위해 이회영·이동녕 등과 함께 정착지 선정활동을 했다. 이를 바탕으로 1911년, 삼원보에 한인들의 자치기구인 경학사와 무장독립투쟁을 위한 무관양성기구인 신흥강습소를 창설했다.

선생은 이동녕·이광·김창환 등과 함께 군사 교관이 되어 직접 사관생도들의 훈련을 담당하는 등 무관 양성을 위해 노력했다.

1916년에는 독립운동을 위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귀국했으며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배재학당의 학생 동원 책임자로 활동 중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선생은 1945년 광복 후 고향인 공주로 돌아와 광정성결교회의 집사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1972년 89세의 일기로 작고했다.

1990년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및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됐다.

조병철 문화재과장은 “정안면 사현리에서 태어나 애국계몽운동, 무장투쟁운동 등을 통해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인 이관직 선생의 삶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23년 1월의 역사인물로 선정했다”며, “1월 중 시민을 대상으로 이관직 선생 관련 프로그램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인물 많이 본 기사